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바람 28

사라진 얼굴 / 하 재 청

그림 : 권 영 애 ​ ​ 사라진 얼굴 / 하 재 청 ​ ​ 바닥을 쓸면서 잊어버렸던 얼굴을 찾았다 포대기 하나 덮어쓰고 사라진 얼굴 아무도 그가 누군지 모른다 온몸에서 눈물을 짜내며 요란하게 울던 그를 이제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늘 거기에 있었다 담았던 바람을 다 쏟아내는 날 새로 바람을 다 쏟아내는 날 새로 바람을 온몸에 담기 위해 검은 자루 속에서 사라졌을 따름이다 그는 지금 바람을 몸에 담고 있는 중이다 거리를 활보하는 바람을 담으며 새로운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바람을 몸에 담아 힘껏 짜내면 눈물이 난다 한 번 힘차게 울기 위해서 그는 오늘도 바람을 모으고 있다 울음이 다 빠져나간 포대자루 하나 허공에 펄럭인다 참 이상한 일이지, 잘못 배달된 것일까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 종 해

그림 : 김 미 영 ​ ​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 종 해 ​ ​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살아가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 시집 :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오래 다닌 길 / 이 어 령

그림 : 이 승 희 ​ ​ 오래 다닌 길 / 이 어 령 ​ ​ 잊고 있던 이름들이 문득 돌아와 생각나듯이 지금 바람이 분다. ​ 파란 정맥이 전선 줄처럼 우는 골목 다들 어디 가고 여기서 바람소릴 듣는가. ​ 식은 재를 헤집듯이 잃어버린 이름을 찾는다. 정원이 홍근이 원순아 그런 날 밤새도록 바람이 불면 보고싶다 오래 다닌 길. ​ ​ ​ 시집 :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의문들 / 심보 선

​ 의문들 / 심 보 선 ​ 나는 즐긴다 장례식장의 커피처럼 무겁고 은은한 의문들을: 누군가를 정성 들여 쓰다듬을 때 그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서글플까 언젠가 누군가를 환영할 준비가 된 고독은 가짜 고독일까 일촉즉발의 순간들로 이루어진 삶은 전체적으로는 왜 지루할까 몸은 마음을 산 채로 염(殮) 한 상태를 뜻할까 내 몸이 자꾸 아픈 것은 내 마음이 원하기 때문일까 누군가 서랍을 열어 그 안의 물건을 꺼내먼 서랍은 토하는 기분이 들까 내가 하나의 사물이라면 누가 나의 내면을 들여다봐줄까 층계를 오를 때마다 왜 층계를 먹고 싶은 생각이 들까 숨이 차오를 때마다 왜 숨을 멎고 싶은 생각이 들까 오늘이 왔다 내일이 올까 바람이 분다 바람이여 광포해져라 하면 바람은 아니어도 누군가 광포해질까 말하자면 혁명은..

부르지 못한 노래 (자작 시)

부르지 못한 노래 / 이 효 바람이 스쳐 간다 머리카락이 비명을 지른다 바람을 막으며 가는 사람 바람을 맞으며 가는 사람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내 마음을 벌거숭이 만드는 자여 청춘은 산에 불을 지피지만 파르르 떠는 잎 하나 산모퉁이 벤치에 젖은 마음 한 장 올려논다. 꽃도 울다 지쳐 떨어지는데 벌거숭이 산을 마주한들 무엇이 두려우라 산은 깊고 푸른데 옹달샘 물 떨어지는 소리에 마음은 톡 톡 톡 어떤 약속 하나 없이 봄날은 간다 부르지 못한 노래를 남겨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