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모자 2

모자이크 / 박은영

그림 / 최연 모자이크 / 박은영 모자 가정이 되었다 정권이 바뀌고 수급비가 끊기자 국밥 한 그릇 사 먹을 돈이 없었다 아홉살 아이는 식탐이 많았다 24시간 행복포차식당에서 두루치기로 일을 하고 눈만 붙였다가 등만 붙였다가 엉덩이만 붙였다가, 부업을 했다 아이가 손톱을 물어뜯을 땐 국밥 먹고 싶다는 말이 나올까봐 야단을 쳤다 반쪽짜리 해를 보며 침을 삼키던 아이는 일찍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찢어진 날들을 붙이면 어떤 계절이 될까 내가 있는 곳은 멀리서 보면 그림이 된다고 했지만 밀린 인형 눈알을 붙이며 가까이 보았다 초점이 맞지 않아 희부옇게 보이는 내일, 아이의 슬픔이 가려지고 조각조각, 조각조각 깍두기 먹는 소리가 들렸다 박은영 시집 /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

두 마음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 ​ 두 마음 / 이 효 ​ 외출하고 돌아왔다. 붉은색 원피스도 모자도 벗는다 모자를 의자 모서리에 걸었다 양파 껍질을 벗기면 눈물이 난다 ​ 인간의 높고자 하는 욕망 틀어논 수도꼭지 같다 하이힐만큼이나 꽃이 달린 모자만큼이나 내 안에 꽈리를 틀고 춤추는 너 ​ 나를 쳐다보는 수많은 신선들 밤에 빛났던 불빛들 새벽 자동차 바퀴에 깔린 시간들 모자 속에 숨었던 새가 둥지에서 작은 깃털이 되는 순간이다 ​ 내일 아침 다시 모자를 쓰고 나갈까 아니, 다시는 모자를 쓰지 말자 두 마음이 키스를 한다 ​ 바벨탑을 오르는 모자들 발자국의 웅성거림 내일도 욕망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