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7

조그만 사랑 / 황동규

그림 / 강애란 조그만 사랑 /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와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김용택이 사랑한 시 / 시가 내게로 왔다

대결 / 이 상 국

그림 / 김 정 수 ​ ​ ​ ​ 대결 / 이 상 국 ​ ​ ​ ​ 큰 눈 온 날 아침 부러져나간 소나무를 보면 눈부시다 ​ 그들은 밤새 뭔가와 맞서다가 무참하게 꺾였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바치기 위하여 공손하게 몸을 내맡겼던 게 아닐까 ​ 조금씩 조금씩 쌓이는 눈의 무게를 받으며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저 빛나는 자해(自害) 혹은 아름다운 마감 ​ 나는 때때로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다 ​ ​ 이상국 시집 / 국수가 먹고 싶다 ​ ​ ​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 글로리아 밴더빌트

그림 / 김 복 연​ ​ ​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 글로리아 밴더빌트 ​ ​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외로운 여름과 거짓 꽃이 시들고도 기나긴 세월이 흐를 때 사랑은 천천히 오는 것 얼어붙은 물속으로 파고드는 밤하늘의 총총한 별처럼 조용히 내려앉는 눈과같이 조용히 천천히 땅속에 뿌리박는 풀처럼 사랑은 더디고도 종용한 것 내리다가 흩날리는 눈처럼 사랑은 살며시 뿌리로 스며드는 것 씨앗이 싹트듯 달이 커지듯 천천히 ​ ​ ​ 시집 / 매일 시 한 잔 ​ ​ ​

고요한 귀향 / 조 병 화

그림 / 김 희 정 ​ ​ ​ ​ 고요한 귀향 / 조 병 화 ​ ​ ​ 이곳까지 오는 길 험했으나 고향에 접어드니 마냥 고요하여라 ​ 비가 내리다 개이고 개다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다 폭설이 되고 폭설이 되다 봄이 되고 여름이 되고 홍수가 되다 가뭄이 되고 가을 겨울이 되면서 만남과 이별이 세월이 되고 마른 눈물이 이곳이 되면서 ​ 지나온 주막들 아련히 고향은 마냥 고요하여라 ​ 아, 어머님 안녕하셨습니까. 조병화시집 / 고요한 귀향 ​ ​ ​ ​ 그림 / 김 희 정

마음의 꽃병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 ​ 마음의 꽃병 / 이 효 ​ 한 해가 다 저물기 전에 담밖에 서 있는 너에게 담안에 서 있는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 보인다 ​ 높은 담만큼이나 멀어졌던 친구여 가슴에 칼날 같은 말들이랑 바람처럼 날려버리자 ​ 나무 가지만큼이나 말라버린 가슴이여 서먹했던 마음일랑 눈송이처럼 녹여버리자 ​ 오늘 흰 눈이 내린다 하늘이 한 번 더 내게 기회를 준 것 같구나 하얀 눈 위에 글씨를 쓴다 ​ 내 마음의 꽃병이 되어다오. ​

눈사람 일기 ( 이 효 )

​ 아빠처럼 / 이 효 ​ 나는 매일 꿈을 꾸지 아빠처럼 커지는 꿈을 ​ 오늘은 아빠가 되었어 아빠 장갑 아빠 모자 ​ 아빠 마음은 어디다 넣을까 가슴에 넣었더니 너무 따뜻해서 눈사람이 녹아버렸네. ​ ​ 눈사람 입 / 이 효 ​ 눈 사람 입은 어디 있지? 엄마가 예쁘다고 뽀뽀해 주었더니 앵두처럼 똑 떨어졌네. ​ ​ 가족 / 이 효 ​ 아빠는 회사 가고 엄마는 학교 가고 오빠는 학원 가고 동생은 어린이집 가고 나는 유치원 간다. ​ 매일매일 바쁜 우리 가족 눈이 내린 날 눈사람 만든다고 모두 모였다. ​ 매일 눈이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 ​ 귀가 큰 눈사람 / 이 효 ​ 코로나로 세상이 시끄럽다 국회의원 아저씨들 매일 싸운다 우리들 보고 싸우지 말라더니 내 귀는 점점 커진다 시끄러운 세상이 하얀 눈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