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공광규시인 3

병 / 공광규

그림 / 이중섭 병 / 공광규 고산지대에서 짐을 나르는 야크는 삼천 미터 이하로 내려가면 오히려 시름시름 아프다고 한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동물 주변에도 시름시름 아픈 사람들이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파 죽음까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다 직장도 잘 다니고 아부도 잘하고 돈벌이도 아직 무난하다 내가 병든 것이다 공광규 시집 / 파주에게

가죽 그릇을 닦으며 / 공 광 규

그림 / 권 옥 연 ​ ​ ​ 가죽 그릇을 닦으며 / 공 광 규 ​ ​ 여행준비 없이 바닷가 민박에 들러 하룻밤 자고 난 아침 ​ 비누와 수건을 찾다가 없어서 퐁퐁으로 샤워하고 행주로 물기를 닦았다 ​ 몸에 행주질을 하면서 내 몸이 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뼈와 피로 꽉 차 있는 가죽 그릇 수십 년 가계에 양식을 퍼 나르던 그릇 ​ 한때는 사람 하나를 오랫동안 담아두었던 1960년산 중고품 가죽 그릇이다 ​ 흉터 많은 가죽에 묻은 손때와 쭈글쭈글한 주름을 구석구석 잘 닦아 ​ 아름다운 사람 하나를 오래오래 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 ​ ​ 문예감성 / 2021 봄 , 24호 ​ ​ 그림 / 박 삼 덕 ​

놀란 강 / 공 광 규

그림 : 김 경 희 ​ ​ 놀란 강 / 공 광 규 ​ 강물은 몸에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모래밭은 몸에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새들은 지문 위에 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그래서 강은 수천 리 화선지인데 수만 리 비단인데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인데 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 수십억 장 원고지인데 그걸 어쩌겠다고? 쇠붙이와 기계 소리에 놀라서 파랗게 질린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