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고양이 3

누가 고양이 입속의 시를 꺼내 올까 / 최금진

그림 / 이율 누가 고양이 입속의 시를 꺼내 올까 / 최금진 혓바닥으로 붉은 장미를 피워 물고 조심조심 담장을 걷는 언어의 고양이 깨진 유리병들이 거꾸로 박힌 채 날 선 혓바닥을 내미는 담장에서 줄장미는 시뻘건 문장을 완성한다 경사진 지붕을 타 넘으면 세상이 금세 빗면을 따라 무너져 내릴 것 같아도 사람은 잔인하고 간사한 영물 만약 저들이 쳐놓은 포회틀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구름으로 변장하여 빠져나올 것이다 인생무상보다 더 쉽고 허무한 비유는 없으니 이 어둠을 넘어가면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달덩이가 있다 거기에 몸에 꼭 맞는 둥지도 있다 인간에게 최초로 달을 선사한 건 고양이 비유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테니 흰 접시 위에 싱싱한 물고기 한 마리 올려놓는다 언어는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하늘로 달아..

병정들 / 오 경 은

그림 / 김 경 화​ ​ ​ ​ 병정들 / 오 경 은 ​ 성당 천장에 닿을 수 있을까 나를 몇 토막 쌓아야 ​ 맨 뒷줄에서 바라본 신부님은 플라스틱 병정 같고 ​ 죄랑 조금 더 친해진다 미사 내내 앉았다 일어났다 고장난 스프링처럼 ​ 허벅지 사이에 땀 차서 싫죠 신부님도 옷 벗고 싶죠 ​ 꼬리를 치켜올린다 벤치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주인 없는 고양이가 ​ 죄는 언제나 일인용이어서 ​ 옆에 앉은 사람과 포옹을 나눌 때마다 죄는 자꾸 다정해지지 덕담처럼 ​ 미사포로 코를 풀어도 용서해줄 거지? ​ 성당을 나서자 몰아치는 햇빛 ​ 고양이가 수풀 사이로 뛰어들었다 찐득거리는 그림자를 불쾌해하는 기색없이 ​ ​ ​ *고려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중 *2018년 중앙신인 문학상 시 부문 당..

지금 세상은 가을을 번역 중이다

​ 지금 세상은 가을을 번역 중이다 / 이 수 정 ​ 구름이 태어나는 높이 나뭇잎이 떨어지는 순서 새를 날리는 바람의 가짓수 들숨과 날숨의 온도 차 일찍 온 어둠 속으로 숨어드는 고양이의 노란 눈동자 밤새 씌어졌다 지워질 때 비로소 반짝이는 가을의 의지 ​ 고르고 고른 말 이성적인 배열과 충동적인 종결 ​ 각자의 언어로 번역되는 가을 ​ *이수정 2001년 을 통해 등단했다. ​ ​ ​

카테고리 없음 2020.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