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고독 6

꿈과 충돌하다 / 조하은

그림 / 최 미 정 꿈과 충돌하다 / 조하은 밤인지 새벽인지 모호한 시간 벗은 몸을 파스텔 톤으로 비춰주는 욕실 거울 속에서 아련함과 사실 사이의 경계를 바라본다 기억할 만한 봄날은 어디에도 없다 얼토당토 않은 박자가 쉰 살의 시간을 두둘겨댈 때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고독이 타일 위로 뚝뚝 떨어졌다 심장과 뇌의 온도가 달라 가려운 뿔들이 불쑥불쑥 자라났다 날마다 기울어지는 사이렌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잠으로 가는 길을 몰라 날마다 잠과 충돌했다 바람이 몸 안을 들쑤시고 있었다 조하은 시집 / 얼마간은 불량하게

고독하다는 것은 / 조 병 화

그림 / 정 혜 숙 ​ ​ ​ 고독하다는 것은 / 조 병 화 ​ ​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보아도 어린 시절의 마당보다 좁은 이 세상 인간의 자리 부질없는 자리 ​ ​ ​ 시집 / 다시 사랑하는 시 하나를 갖고싶다 ​ ​

홀로 새우는 밤 / 용 혜 원

그림 : 김 정 수 홀로 새우는 밤 / 용 혜 원 홀로 새우는 밤 세상 바다에 나뭇잎새로 떠 있는 듯 아무리 뒤척여 보아도 어둠이 떠날 줄 모르고 나를 가두어 놓았다 혼자라는 고독을 느낄 나이가 되면 삶이란 느낌만으로도 눈물만으로도 어찌할 수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함께할 수 있는 이 있어도 홀로 잠들어야 하는 밤 시계 소리가 심장을 쪼개고 생각이 수없이 생각을 그려낸다 밤을 느낄 때 고독을 느낀다 벌써 밤이 떠날 시간이 되었는데 내 눈에 아직 잠이 매달려 있다 시집: 용혜원의 그대에게 주고 싶은 나의 시

의문들 / 심보 선

​ 의문들 / 심 보 선 ​ 나는 즐긴다 장례식장의 커피처럼 무겁고 은은한 의문들을: 누군가를 정성 들여 쓰다듬을 때 그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서글플까 언젠가 누군가를 환영할 준비가 된 고독은 가짜 고독일까 일촉즉발의 순간들로 이루어진 삶은 전체적으로는 왜 지루할까 몸은 마음을 산 채로 염(殮) 한 상태를 뜻할까 내 몸이 자꾸 아픈 것은 내 마음이 원하기 때문일까 누군가 서랍을 열어 그 안의 물건을 꺼내먼 서랍은 토하는 기분이 들까 내가 하나의 사물이라면 누가 나의 내면을 들여다봐줄까 층계를 오를 때마다 왜 층계를 먹고 싶은 생각이 들까 숨이 차오를 때마다 왜 숨을 멎고 싶은 생각이 들까 오늘이 왔다 내일이 올까 바람이 분다 바람이여 광포해져라 하면 바람은 아니어도 누군가 광포해질까 말하자면 혁명은..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 허 수 경

​ Tiage Bandeira / Unsplash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 허 수 경 ​ 나는 내 섬에서 아주 오래 살았다 그대들은 이제 그대들의 섬으로 들어간다 ​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 그대들의 고독 역시 그러하다 ​ 고독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지만 기필코 우리를 죽이는 살인자인 것은 사실이다 ​ 그 섬으로 들어갈 때 그대들의 챙긴 물건은 그 섬으로 들어갈 때 내가 챙긴 물건과 비슷하지만 단 하나 다른 것쯤은 있을 것이다 ​ 내가 챙긴 사랑의 편지가 그대들이 챙긴 사랑의 편지와 빛이 다른 것 ​ 그 차이가 누구는 빛의 차이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세기의 차이다 태양과 그림자의 차이다 이것이 고독이다 ​ 섬에서 그대들은 나에게 아무 기별도 넣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