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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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천양희

그림 / 김 정 수 ​ ​ ​ ​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천양희 ​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산 넘어버렸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강 건너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집까지 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하면서 나는 그걸 위해 다른 것 다 버렸지요. 그땐 슬픔도 힘이 되었지요. 그 시간은 저 혼자 가버렸지요.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었지요. ​ ​ ​ 시집 /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 ​ ​

놀란 강 / 공 광 규

그림 : 김 경 희 ​ ​ 놀란 강 / 공 광 규 ​ 강물은 몸에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모래밭은 몸에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새들은 지문 위에 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그래서 강은 수천 리 화선지인데 수만 리 비단인데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인데 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 수십억 장 원고지인데 그걸 어쩌겠다고? 쇠붙이와 기계 소리에 놀라서 파랗게 질린 강 ​

수종사 풍경 / 공 광 규

그림 : 조 성 호 ​ ​ ​ 수종사 풍경 / 공 광 규 ​ ​ 양수강이 봄물을 산으로 퍼올려 온 산이 파랗게 출렁일 때 ​ 강에서 올라온 물고기가 처마 끝에 매달려 참선을 시작했다 ​ 햇볕에 날아간 살과 뼈 눈과 비에 얇어진 몸 ​ 바람이 와서 마른 몸을 때릴 때 몸이 부서지는 맑은소리 ​ ​ 문예감상 / 2021 봄호 ​ ​ 그림 : 전 지 숙

돌담에 햇살처럼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돌담에 햇살처럼 / 이 효 돌담에 악보를 그리는 햇살같이 청춘들이 고요한 노래로 물든다 돌담을 타고 오르는 푸른 잎같이 오늘 하루 하늘의 주인공이 된다 서로를 끌어안은 돌담 같은 청춘들 바다에서 굴러온 돌들 강에서 굴러온 돌들 밭에서 굴러온 돌들 벽이 되어준 부모를 떠나서 스스로 벽이 된다 비가 오면 더욱 선명해지는 벽의 색깔들 가난이 푹푹 쌓여도 햇살을 기다린다 공이 벽으로 날아와도 푸른 잎으로 막는다 돌담에 햇살이 비치면 배가 항해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