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감자 4

감자떡 / 이 상 국

그림 / 조 은 희 ​ ​ ​ ​ ​ 감자떡 / 이 상 국 ​ ​ ​ 하지가 지나면 성한 감자는 장에 나가고 다치고 못난 것들은 독에 들어가 ​ ​ 가을까지 몸을 썩혔다 헌 옷 벗듯 껍질을 벗고 ​ 물에 수십 번 육신을 씻고 나서야 그들은 분보다 더 고운 가루가 되는데 ​ 이를테면 그것은 흙의 영혼 같은 것인데 강선리 늙은 형수님은 ​ 아직도 시어머니 제삿날 그걸로 떡을 쪄서 우리를 먹이신다 ​ ​ ​ ​ ​

찬란 / 이병률

그림 / 임 정 순 ​ ​ ​ 찬란 / 이병률 ​ ​ ​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 감자에서 난 싹을 화분에 옮겨 심으며 손끝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는 것도 오래도록 내 뼈에 방들이 우는 소리 재우는 일도 찬란이다 ​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으므로 의자에 먼지 앉는 일은 더 찬란이리 찬란하지 않으면 모두 뒤처지고 광장에서 멀어지리 ​ 지난밤 남쪽의 바다를 생각하던 중에 등을 켜려다 전구가 나갔고 검푸른 어둠이 굽이쳤으나 생각만으로 겨울을 불렀으니 찬란하다 ​ 실로 이기고 지는 깐깐한 생명들이 뿌리까지 피곤한 것도 햇빛의 가랑이 사이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이 만나는 것도 무시무시한 찬란이다 ​ ​ ​ ​ ​ 시집 /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열네 살이 묻고 철학이 답한다.

그림 / 이 명 옥 ​ ​ ​ 열네 살이 묻고 철학이 답한다. ​ ​ 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을까? 나는 여동생보다 반려견이 있었으면 하고 더 바랐다. 여동생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럽다고 모든 사람이 말해서 서운하기도 했다. 내가 제일 사랑스럽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난주에 동생은 무척 열이 났고, 내가 잠시 동생을 돌봐 주었다. 볼이 빨갛고 마치 삶은 감자처럼 뜨거운 동생은 내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워 있었다. 나는 몰래 여동생에게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혹시 나의 질투하는 마음 때문에 동생이 아픈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 ​ ​ ​ 감정은 사랑 안에 깃들지만 사람은 자신의 사랑 안에 살아간다. - 마르틴 부버 - ​ ​ 책 / 질문의 책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