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가을시 3

가을 사랑 / 도 종 환

그림 / 양 인 선 ​ ​ ​ ​ 가을 사랑 / 도 종 환 ​ ​ ​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 부는 저녁 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 ​ ​ ​ ​ ​ ​

​가을 / 송찬호

그림 / 이 규 영 ​ ​ ​ ​ 가을 / 송찬호 ​ ​ ​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 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 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 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고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 가웃은 된다고 빙그레 웃었다 ​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 않은 ..

나무 / 이 성 선

그림 / 이 성 순 ​ ​ ​ 나무 / 이 성 선 ​ ​ 나무는 몰랐다 자신이 나무인 줄을 더구나 자기가 하늘의 우주의 아름다운 악기라는 것을 그러나 늦은 가을날 잎이 다 떨어지고 알몸으로 남은 어느 날 그는 보았다 고인 빗물에 비치는 제 모습이 떨고 있는 사람 하나 가지가 모두 현이 되어 온종일 그렇게 조용히 하늘 아래 울고 있는 자신을 ​ ​ 시집 / 매일 시 한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