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가마솥 2

해장국 끓이는 여자와 꽃

그림 : 김 정 수 ​ 해장국 끓이는 여자와 꽃 / 이 효 ​ 사람들이 잠든 새벽 해장국 끓이는 여자는 가슴에 꽃씨를 품는다 ​ 내일은 해장국집 간판 내리는 날 애꿎은 해장국만 휘휘 젓는다 ​ 옆집 가계도, 앞집 가계도 세상 사람들이 문 앞에 세워놓은 눈사람처럼 쓰러진다 희망이 다 사라진 걸까 ​ 화병 안에 환하게 웃고 있는 꽃송이 하나 뽑아 가계 앞 눈사람 가슴에 달아준다 ​ 무너지지 마 오늘 하루만 더 버텨보자 폭풍 속에 나는 새도 있잖아 ​ 가마솥에 꽃이 익는다 여자는 마지막 희망을 뚝배기에 담는다 눈물 한 방울 고명으로 떠있다 ​

호박에 관하여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 호박에 관하여 / 이 효 ​ 벽 같은 영감탱이라고 밤낮 소리 질렀는데 그래도 못난 마누라 배 나왔다고 등 받쳐주는 건 당신뿐이구려 ​ 내 손바닥 거칠다고 손 한 번 잡아주지 않더니 간밤에 슬며시 까칠한 잎 담장 위에 올려놓은 건 당신뿐이구려 ​ 이웃집 늙은 호박 누렇게 익어 장터에 팔려 나갔는데 시퍼렇게 익다만 내게 속이 조금 덜 차면 어떠냐고 한 번 맺은 인연 끈지 말자며 투박한 말 건넨 건 당신뿐이구려 ​ 둥근 호박 메달은 긴 목 바람에 끊어져 나갈까 봐 몸에 돌을 쌓고 흙을 발라서 바람 막아주는 건 당신뿐이구려 ​ 영감, 조금만 참아주시오 내 몸뚱이 누렇게 익으면 목줄 끊어져도 좋소 당신을 위해서라면 호박죽이 될망정 뜨거운 가마솥에 들어가리라 ​ 늙어서 다시 한번 펄펄 끓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