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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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온 / 신현림

그림 / 김원경 체온 / 신현림 그토록 그윽하게 출렁거리면서 남도 들판은 갈색 창호지 같은 저녁을 태운다 흙 속에서 둥둥 북소리가 울리고 무등산 그늘이 나를 덥는다 나를 울린다 무섭고 오랜 날씨를 견딘 운주사 석불처럼 한없는 부드러움에 감겨 굳은 외투가 부푼다 바늘 같은 마을 불빛, 소쇄원 대나무 숲의 은밀한 질서 저 스러지고 소생하는 야생의 체온 얼마나 장엄한 덧없음이 지상을 움직이는가 조금만 건드려도 부서질 아름다움이 인생을 다스리는가 이 순간의 희열을 위해 서울을 떠나왔듯 쾌감의 끝이 슬픔이듯 내 발은 흙 속에 잠긴다 신현림 시집 /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다리 / 정복여

그림 / 장순업 ​ ​ 다리 / 정복여 ​ ​ 강물 이라든지 꽃잎 이라든지 연애 그렇게 흘러가는 것들을 애써 붙들어보면 앞자락에 단추 같은 것이 보인다 가는 끝을 말아쥐고 부여잡은 둥긂 그 표면장력이 불끈 맺어놓은 설움에 꽁꽁 달아맨 염원의 실밥 ​ 바다로나 흙으로나 기억으로 가다 잠깐 여며보는 그냥...... 지금...... 뭐...... 그런 옷자락들 ​ 거기 흠뻑 발 젖은 안간힘의 다리가 보인다 ​ ​ ​ ​ 정복여 시집 / 체크무늬 남자 ​ ​ ​ ​ ​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 윤 성 택

그림 / 김 행 일 ​ ​ ​ ​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 윤 성 택 ​ ​ ​ 계단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뎠습니다 들고 있던 화분이 떨어지고 어둡고 침침한 곳에 있었던 뿌리가 흙 밖으로 드러났습니다 내가 그렇게 기억을 엎지르는 동안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내 안 실뿌리처럼 추억이 돋아났습니다 다시 흙을 모아 채워 넣고 앞으로는 엎지르지 않겠노라고 손으로 꾹꾹 눌러 주었습니다 그때마다 꽃잎은 말없이 흔들렸습니다 앞으로는 엎지르지 않겠노라고 위태하게 볕 좋은 옥상으로 너를 옮기지 않겠노라고 원래 자리가 그대 자리였노라 물을 뿌리며 꽃잎을 닦아내었습니다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 ​ ​ ​ * 1972년 충남 보령 출생 * 2001년 문학사상' 신인상 수상 * 시집으로 (문학동네,2006) * 현재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