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향기 9

꽃밭을 바라보는 일 / 장석남

그림 / 백기륜 꽃밭을 바라보는 일 / 장석남 저 꽃밭에 스미는 바람으로 서걱이는 그늘로 편지글을 적었으면 함부로 멀리 가는 사랑을 했으면 그 바람으로 나는 레이스 달린 꿈도 꿀 수 있었으면 꽃속에 머무는 햇빛들로 가슴을 빚었으면 사랑의 밭은 처마를 이었으면 꽃의 향기랑은 몸을 섞으면서 그래 아직은 몸보단 영혼이 승한 나비였으면 내가 내 숨을 가만히 느껴 들으며 꽃밭을 바라보고 있는 일은 몸에,도망온 별 몇을 꼭 나처럼 가여워해 이내 숨겨주는 일같네 장석남 시집 / 꽃밭을 바라보는 일

​시월을 추억함 / 나호열

그림 / 구 경 순 ​ ​ ​ ​시월을 추억함 / 나호열 서러운 나이 그 숨찬 마루턱에서 서서 입적(入寂)한 소나무를 바라본다 길 밖에 길이 있어 산비탈을 구르는 노을은 여기저기 몸을 남긴다 생(生)이란 그저 신(神)이 버린 낙서처럼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풀꽃이었을까 하염없이 고개를 꺾는 죄스런 모습 아니야 아니야 머리 흔들 때마다 우루루 쏟아져 나오는 검은 씨앗들 타버린 눈물로 땅 위에 내려앉을 때 가야할 집 막막하구나 그렇다 그대 앞에 설 때 말하지 못하고 몸 뒤채며 서성이는 것 몇 백 년 울리는 것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 나이었던가 향기(香氣)를 버리고 빛깔을 버리고 잎을 버리는 나이 텅 빈 기억 속으로 혼자 가는 발자국 소리 가득하구나 ​ ​ ​ ​

봄의 시인 / 이어령

​ 봄의 시인 / 이어령 ​ ​ 꽃은 평화가 아니다. 저항이다. 빛깔을 갖는다는 것, 눈 덮인 땅에서 빛깔을 갖는다는 것 그건 평화가 아니라 투쟁이다. ​ ​ 검은 연기 속에서도 향기를 내뿜는 것은 생명의 시위. 부지런한 뿌리의 노동 속에서 쟁취한 땀의 보수. ​ ​ 벌과 나비를 위해서가 아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가 아니다. 꽃은 오직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서 색채와 향기를 준비한다. 오직 그럴 때만 정말 꽃은 꽃답게 핀다. ​ ​ 꽃은 열매처럼 먹거나 결코 씨앗처럼 뿌려 수확을 얻지는 못한다. 다만 바라보기 위해서 냄새를 맡기 위해서 우리 앞에 존재한다. ​ ​ 그래서 봄이 아니라도 마음이나 머리의 빈자리 위에 문득 꽃은 핀다. ​ ​ 시인의 은유로 존재하는 꽃은 미소하고 있는 게 아니다 가끔 분노로 타..

봄비 닮은 어머니 / 강 원 석

그림 : 박 규 호 ​ ​ 봄비 닮은 어머니 / 강 원 석 ​ ​ 연초록 가득 안고 비가 내리니 빗물 따라온 풋풋한 봄 내음 그 향기에 새가 울고 그 향기에 꽃이 핀다 ​ 비가 오는 봄날에는 어린 나를 바라보시던 눈빛 촉촉한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고 ​ 홍매화 입술에 진달래꽃 볼을 지닌 어머니 ​ 봄비 같은 어머니 눈물로 이만큼 자라고 예쁜 꽃도 피웠는데 나로 인해 어머니는 행복하셨나 ​ 비가 오는 봄날에는 봄풀 향기 그윽한 우리 어머니 다만 그 품이 못내 그리웁다 ​ ​ 시집 :너에게 꽃이다

작은 소망 / 김 명 자

그림 : 베르디쉐프 ​ ​ ​ 작은 소망 / 김 명 자 ​ ​ 깊은 산중 꽃이라면 참 좋겠습니다 그다지 예쁘지 않아도 애써 향기를 팔지 않아도 내 사랑 영원히 하나일 테니까 ​ 인적 없는 산속에 무심히 자란 풀이라면 차라리 좋겠습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구름이 가면 가는 대로 내 눈길 주고픈 대로 마음 주고픈 대로 모두 주어도 짓밟히며 뜯기는 아픔일랑 없을 테니까요 ​ 첩첩 산중 바위라면 정말 좋겠습니다 내 마음 살피는 이 하나 없어도 마음 서운치 않고 세상에 뿌려진 어여쁜 시간들 가슴으로, 한 가슴으로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 ​ ​ 시집 : 인사동 시인들

수국 형제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 ​ ​ 수국 형제 / 이 효 ​ 마당 한편에 동자승 닮은 수국이 피었다 하늘길 따라가신 아버지 마당에 달덩이 닮은 수국 남겨 놓으셨다 ​ 아버지 살아생전 몰랐다 붉은빛으로 핀 수국 하얀 빛으로 핀 수국 서로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형제들 ​ 어머니가 쓰러진 그날 삼 형제는 함께 비를 맞으며 어머니를 업고 달렸다 둥근 우산 닮은 수국들 처음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 아버지 얼굴 닮은 수국들 어쩌면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 소낙비가 내려도 머리 맞대고 살아라 잃은 것이 있어도 웃으면서 살아라 은은한 향기 서로 보태며 살아라 ​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가 마당 한가득 피었다.

슬픔이 빚어낸 빛깔 / 최 경 선

그림 : 류 영 도 ​ ​ 슬픔이 빚어낸 빛깔 / 최 경 선 ​ ​ 저토록 도도한 빛깔을 본적 없다 했다 ​ 한때는 핏빛처럼 고운 그 꽃잎이 눈부셔 까닭 없이 울었다 했다 ​ 애타게 향기로운 척해보고 꿈꾸듯 별을 품어 토해내고 알 수 없는 허허로움에 목메던 시절이었노라고 ​ 빛바래고 바래다, 오지게 말라비틀어져 가는 그 모양이 당신 모습 같아 더 섧고도 서럽다 했다 ​ 하다 하다, 끝내는 열정과 슬픔 버무린 듯한 저 도도함이 눈물겹지 않으냐며 ​ 옹이 박힌 등허리 성스럽게 웅크리며 그녀 고요히 똬리를 튼다 ​ ​ 시집 : 그 섬을 떠나왔다

보라빛 엽서 / 김 연 일 <작사>

그림 : 김 정 수 ​ ​ 보라빛 엽서 / 김 연 일 ​ 보라빛 엽서에 실려온 향기는 당신의 눈물인가 이별의 마음인가 한숨 속에 묻힌 사연 지워 보려 해도 떠나버린 당신 마음 붙잡을 수 없네 오늘도 가버린 당신의 생각엔 눈물로 써 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엔 다시 못 올 그대 모습 기다리는 사연 오늘도 가버린 당신의 생각에 눈물로 써 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엔 다시 못 올 그대 모습 기다리는 사연 오늘도 가버린 당신의 생각에 눈물로 써 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엔 다시 못 올 그대 모습 기다리는 사연 다시 못 올 그대 모습 기다리는 사연 ​ * 보라빛 엽서 탄생 배경 23년 전 이웃사촌처럼 지내던 병원 의사가 가사를 써서 설운도에게 주었다고 한다. 애절한 가사에 매료된 설운도는 밤을 새워 곡을 완성 했지만 당시는 신나..

사람이 되는 것, 꽃이 되는 것

인생이란 소유하거나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는 것이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 법정 스님은 스스로 행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다 나다운 보다 꽃다운 보다 인간다운 삶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인간을 가르는 척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행복한 자와 불행한 자의 기준인양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많이 가진 자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많고 적게 가져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결국은 남과 비교하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법정 스님 말씀처럼 스스로 행복해질 때가 가장 인간답게 살고,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들판에 활짝 핀 꽃들도 욕심을 부리거나 자리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씨앗이 떨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꽃을 피워 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