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햇빛 2

꽃밭을 바라보는 일 / 장석남

그림 / 백기륜 꽃밭을 바라보는 일 / 장석남 저 꽃밭에 스미는 바람으로 서걱이는 그늘로 편지글을 적었으면 함부로 멀리 가는 사랑을 했으면 그 바람으로 나는 레이스 달린 꿈도 꿀 수 있었으면 꽃속에 머무는 햇빛들로 가슴을 빚었으면 사랑의 밭은 처마를 이었으면 꽃의 향기랑은 몸을 섞으면서 그래 아직은 몸보단 영혼이 승한 나비였으면 내가 내 숨을 가만히 느껴 들으며 꽃밭을 바라보고 있는 일은 몸에,도망온 별 몇을 꼭 나처럼 가여워해 이내 숨겨주는 일같네 장석남 시집 / 꽃밭을 바라보는 일

유리의 기술 / 정병근

그림 / 김환기 유리의 기술 / 정병근 유리창에 몸 베인 햇빛이 피 한 방울 없이 소파에 앉아 있다 고통은 바람인가 소리인가 숨을 끊고도, 저리 오래 버티다니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이자 햇빛은 비로소 신음을 뱉으며 출렁인다 고통은 칼날이 지나간 다음에 찾아오는 법 회는 칼날의 맛이 아니던가 깨끗하게 베인 과일의 단면은 칼날의 기술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풍경의 살을 떠내는 저 유리의 기술, 머리를 처박으며 붕붕거리는 파리에게 유리는 불가해한 장막일 터, 훤히 보이는 저곳에 갈 수 없다니! 이쪽과 저쪽, 소리와 적막 그 사이에 통증 없는 유리의 칼날이 지나간다 문을 열지 않고도 안으로 들이는 단칼의 기술, 바람과 소리가 없다면 고통도 없을 것이다 *시집 / 번개를 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