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첫눈 3

새해가 내려요 / 이 효

그림 / 이 봉 화 새해가 내려요 / 이 효 꿈틀거리는 지난 시간의 내장들 끊어진 소통 위로 눈이 내린다 방전된 몸으로 새해를 넘어온 사람들 아픈 손톱에 첫눈을 발라준다 뾰얀 속살이 차곡 쌓인 달력을 단다 말풍선에 매달란 섬들이 소통하고 유리벽을 타는 용서가 녹아내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가 찰칵 찍어 놓은, 첫눈 오는 날 핸드폰 속에서 풍겨오는 사람 내음 눈사람은 서로의 안부를 그렁한 눈발로 묻는다 까똑 까똑 까똑 *신문예 1월의 시 / 이 효

첫눈 / 조하은

그림 / 바실리 칸딘스키 ​ ​ ​ 첫눈 / 조하은 ​ ​ 육성회비 봉투 비어 있는 채로 들고 간 날 등을 떠민 담임선생님은 빈 봉투 대신 들고 온 날고구마로 내 머리통을 후려쳤다 ​ 빈 봉투와 생고구마가 날아오르던 교실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 의자를 들고 벌을 섰다 ​ 미열이 온몸으로 흘러들어와 마구 돌아다녔다 헛것이 보였다 운동장 귀퉁이 사시나무도 시름시름 앓았다 달아오르는 날이었다 ​ 창밖에는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 ​ ​ ​ 조하은 시집 / 얼마간은 불량하게 *충남 공주 출생 *2015년 (시에티카)로 등단 ​ ​ ​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 호 승

​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 호 승 ​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는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 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 사랑하는 사람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이 내린다 ​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