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정호승시선집 2

서대문 공원 / 정호승

그림 / 유민 서대문 공원 / 정호승 서대문 공원에 가면 사람을 자식으로 둔 나무가 있다 폐허인 양 외따로 떨어져 있는 사형 집행장 정문 앞 유난히 바람에 흔들리는 미루나무 미루나무는 말했다 사형 집행이 있는 날이면 애써 눈물은 감추고 말했다 그래 그래 네가 바로 내 아들이다 그래 그래 네가 바로 내 딸이다 그렇게 말하고 울지 말고 잘 가라고 몇날 며칠 바람에 몸을 맡겼다 정호승 시선집 / 내가 사랑하는 사람

벽 / 정 호 승

그림 / 김 정 수 ​ ​ ​ 벽 / 정 호 승 ​ ​ ​ 나는 이제 벽을 부수지 않는다 따스하게 어루만질 뿐이다 벽이 물렁물렁해질 때까지 어루만지다가 마냥 조용히 웃을 뿐이다 웃다가 벽 속으로 걸어갈 뿐이다 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을 걸을 수 있고 섬과 섬 사이로 작은 배들이 고요히 떠가는 봄바다를 한없이 바라볼 수 있다 ​ ​ 나는 한때 벽 속에는 벽만 있는 줄 알았다 나는 한때 벽 속의 벽까지 부수려고 망치를 들었다 망치로 벽을 내리칠 때마다 오히려 내가 벽이 되었다 나와 함께 망치로 벽을 내리치던 벗들도 결국 벽이 되었다 부술수록 더욱 부서지지 않는 무너뜨릴수록 더욱 무너지지 않는 벽은 결국 벽으로 만들어지는 벽이었다 ​ ​ 나는 이제 벽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벽을 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