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절망 4

날품 / 김 명 희

그림 / 정 은 하 ​ ​ 날품 / 김 명 희 ​ 이른 새벽 한 무리의 인부들이 봉고차에 실린다 이내 어느 현장으로 옮겨진 그들 어둠을 깨고 부수고 그 위에 아침을 쌓는다 건물이 한 뼘씩 오를 때마다 그들의 몸은 개미들처럼 작아진다 안전화는 전혀 안전하지 못한 공중만 떠들고 가벼운 지폐 몇 장 삼겹살과 소주로 선술집 상을 채우는 고마운 저녁 밤이 이슥해지자 한둘만 남기고 봉고차는 어둠저쪽 어디론가 사라지고 무심히 흘려 넣은 거나한 꿈들은 졸음 한켠 후미진 담벼락에서 음습한 절망으로 젖어간다 희망의 괘도를 벗어난 안전화만이 누군가의 넋두리를 따라서 귀가하는 밤 이젠, 욱신거리는 잠의 날품을 팔아야 할 시간이다 ​ ​ ​ ​ 김명희 시집 / 화석이 된 날들 ​ ​ ​ ​

그대여 절망이라 말하지 말자 / 도종환

​그대여 절망이라 말하지 말자 / 도종환 ​ 그대여 절망이라 말하지 말자 그대 마음의 눈녹지 않는 그늘 한쪽을 나도 함께 아파하며 바라보고 있지만 그대여 우리가 아직도 아픔 속에만 있을 수는 없다 슬픔만을 말하지 말자 돌아서면 혼자 우는 그대 눈물을 우리도 알지만 머나먼 길 홀로 가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지 않는가 눈물로 가는 길 피 흘리며 가야 하는 길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밤도 가고 있는지 그대도 알고 있지 않는가 벗이여 어서 고개를 들자 머리를 흔들고 우리 서로 언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서 가자 그대여 아직도 절망이라고만 말하지 말자 ​ 도종환 시인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충북사범대학 국어국문과 졸업 1984년 동인지 에 시 를 발표하고 등단 ​ ​ ​ ​

바이킹 (2020 신춘문예)

바이킹 / 고명재 선장은 낡은 군복을 입고 담배를 문 채로 그냥 대충 타면 된다고 했다 두려운 게 없으면 함부로 대한다 망해가는 유원지는 이제 될 대로 되라고 배를 하늘 끝까지 밀어 올렸다 모터 소리와 함께 턱이 산에 걸렸다 쏠린 피가 뒤통수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원래는 저기 저쪽 해 좀 보라고 여유 있는 척 좋아한다고 외치려 했는데 으어어억 하는 사이 귀가 펄럭거리고 너는 미역 같은 머리칼을 얼굴에 감은 채 하늘 위에 뻣뻣하게 걸려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공포가 되었다 나는 침을 흘리며 쇠 봉을 잡고 울부짖었고 너는 촛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보면서 무슨 대다라니경 같은 걸 외고 있었다 삐걱대는 뱃머리 양쪽에서 우리는 한 번도 서로를 부르지 않았다 내가 다가갈 때 너는 민들레처럼 머리칼을 펼치며 날아가 ..

돌짝밭 (자작 시)

돌짝밭 / 이 효 돌짝밭이 울었다 씨앗을 품었지만 세상 밖으로 나가기에는 머리를 짓누르는 돌이 무겁다. 흑수저는 울었다 꿈을 품었지만 세상 밖으로 나가기에는 삶을 짖누르는 돈이 무겁다. 내게 물을 주는 자 누구인가? 사람들이 절망을 말할 때 희망을 말하는자 모두가 끝을 말할 때 시작을 말하는 자 입안 한가득 붉은 고추장을 찍은 쌈이 파랗게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