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적막 2

가을 편지 / 나호열

그림 / 노 숙 경 ​ ​ ​ 가을 편지 / 나호열 ​ 당신의 뜨락에 이름모를 풀꽃 찾아왔는지요 눈길 이슥한 먼 발치에서 촛불 떨어지듯 그렇게 당신을 바라보는 꽃 ​ 어느 날 당신이 뜨락에 내려오시면 이미 가을은 깊어 당신은 편지를 읽으시겠는지요 ​ 머무를 수 없는 바람이 보낸 당신을 맴도는 소리죽인 발자국과 까만 눈동자 같은 씨앗들이 눈물로 가만가만 환해지겠는지요 ​ 뭐라고 하던가요 작은 씨앗들은 그냥 당신의 가슴에 묻어 두세요 상처는 웃는다 라고 기억해 주세요 ​ 당신의 뜨락에 또 얼마마한 적막이 가득한지요 ​ ​ ​ 나호열 시인 * 1953년 충남 서천 출생 * 경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 198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 1991년 《시와시학》 중견시인상 수상 * 2004년 녹색 ..

사라진 입들 / 이 영 옥

사라진 입들 / 이 영 옥 잠실 방문을 열면 누에들의 뽕잎 갉아먹는 소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어두컴컴한 방안을 마구 두드리던 비, 눈 뜨지 못한 애벌레들은 언니가 썰어주는 뽕잎을 타고 너울너울 잠들었다가 세찬 빗소리를 몰고 일어났다 내 마음은 누가 갉아먹었는지 바람이 숭숭 들고 있었다 살아 있는 것들이 통통하게 살아 오를 동안 언니는 생의 급물살을 타고 허우적거렸고 혼자 잠실방을 나오면 눈을 찌를 듯한 환한 세상이 캄캄하게 나를 막아섰다 저녁이면 하루살이들이 봉창 거미줄에 목을 매러 왔다 섶 위로 누에처럼 얕은 잠에 빠진 언니의 숨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명주실 같았다 허락된 잠을 모두 잔 늙은 누에들은 입에서 실을 뽑아 제가 누울 관을 짰지만 고치를 팔아 등록금으로 쓴 나는 눈부신 비단이 될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