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과 어머니 / 이효 묵과 어머니 / 이효간병인이 사라진 날 척추가 불안한 어머니 집 딸만 보면 묵을 쑨다 수직 궤도 벗어난 꼬부라진 허리 싱크대에 매달려 추가 된다 끈끈한 묵 나무 주걱으로 세월만큼 휘젓는다 불 줄여라 엄마의 잔소리는 마른 젖 오래 저어라 끈기 있게 살라는 말씀 쫀득하다 어머니 묵 그릇 같은 유언 눈동자에 싸서 집으로 가져온다 풀어보니 검게 탄 일생이 누워 있다 입안에서 엄마 생각이 물컹거린다이효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문학이야기/자작시 2024.12.25
모자이크 눈물 / 이 효 그림 / 최선옥 모자이크 눈물 / 이 효 텅 빈 공원에 동박새를 닮은 어머니 훌쩍 어디론가 날아갈까 봐 가슴에 수의를 벗긴 나무 한 그루 부지런히 눈물로 키운다 저 다리로 어찌 자식들 업고 먼 강물을 건너왔을까 *시집 / 인사동 시인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3.08.11
고추밭 / 안도현 고추밭 / 안도현 어머니의 고추밭에 나가면 연한 손에 매운 물 든다 저리 가 있거라 나는 비탈진 황토밭 근방에서 맴맴 고추잠자리였다 어머니 어깨 위에 내리는 글썽거리는 햇살이었다 아들 넷만 나란히 보기 좋게 키워내셨으니 진무른 벌레 먹은 구멍 뚫린 고추 보고 누가 도현네 올 고추 농사 잘 안되었네요 해도 가을에 가봐야 알지요 하시는 우리 어머니를 위하여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안도현 시집 / 서울로 가는 전봉준 문학이야기/명시 2022.10.25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 정호승 그림 / 김정수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 정호승 잘 자라 우리 엄마 할미꽃처럼 당신이 잠재우던 아들 품에 안겨 장독 위에 내리던 함박눈처럼 잘 자라 우리 엄마 산 그림자처럼 산 그림자 속에 잠든 산새들처럼 이 아들이 엄마 뒤를 따라갈 때까지 잘 자라 우리 엄마 아기처럼 엄마 품에 안겨 자던 예쁜 아기의 저절로 벗겨진 꽃신발처럼 정호승 시선집 / 내가 사랑하는 사람 문학이야기/명시 2022.09.12
생각하믄 뭐하겄냐 / 강 경 주 그림 / 정 은 하 생각하믄 뭐하겄냐 / 강 경 주 손 한번 안 잡아주고 혼자 훌쩍 떠나더니 요새 부쩍 네 아부지가 밤마다 왔다 간다 뒤밟아 따라가다가 까마득 놓치곤 한다야 오라는 건지 있으란 건지 희미한 그 손짓 막걸리도 안 마셨는데 눈앞이 어룽하다 생각함 다 뭐하겄냐 살아 돌아올 것도 아니고 강경주 시집 / 노모의 설법 문학이야기/명시 2021.07.19
할미꽃과 어머니의 노을 / 최 효 열 그림 : 박 인 선 할미꽃과 어머니의 노을 / 최 효 열 어머니는 살아서도 할미꽃, 굽어진 등 너머 팔순세월 마디마디 새겨진 사연 아버지 무덤에서 핀다 당신을 여의고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 감내하며 살아 온 길, 미운 정 고운 정 곱씹으며 푸념 담아 당신에게 올리는 잔 추억으로 피는 그리움이라고, 사랑이라고 살아서도 할미꽃으로 핀다 변화하는 세월 저 깊은 곳에 담겨진 보릿고개보다 외로움을 삭히셨을 눈물로 보낸 세월이 소리 없는 아픔으로 가득한데 산새 사랑가 오리나무에 걸터앉아 울고 오던 길 더듬는 어머니 머리위로 이는 붉은 노을이, 서산으로 어머니의 노을이 진다. 문학이야기/명시 2021.05.08
봄비 닮은 어머니 / 강 원 석 그림 : 박 규 호 봄비 닮은 어머니 / 강 원 석 연초록 가득 안고 비가 내리니 빗물 따라온 풋풋한 봄 내음 그 향기에 새가 울고 그 향기에 꽃이 핀다 비가 오는 봄날에는 어린 나를 바라보시던 눈빛 촉촉한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고 홍매화 입술에 진달래꽃 볼을 지닌 어머니 봄비 같은 어머니 눈물로 이만큼 자라고 예쁜 꽃도 피웠는데 나로 인해 어머니는 행복하셨나 비가 오는 봄날에는 봄풀 향기 그윽한 우리 어머니 다만 그 품이 못내 그리웁다 시집 :너에게 꽃이다 문학이야기/명시 2021.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