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 이 효 그림 / 조희승매미 / 이 효목이 찢어지게 우는 그늘이 없는 배경벗고 또 벗은 여름은 뜨거운 13평 캄캄한 진흙 속, 날개의 불협화음가난의 살 떨림은 무죄다 임대 아파트를 뚫고 나온 본능날개에 기생하는 대출이자 울음은 뼈가 드러난 7월의 비명고열을 앓는 아스팔트 위, 허물 벗은 죽음 하나 지나가는 사람들 발밑에 매달린 무례한 귀발소리, 숨소리 사라진 무채색이다 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5.07.21
산이 사람을 가르친다 / 나 호 열 그림 / 진 선 미 산이 사람을 가르친다 / 나 호 열 산이 사람을 가르친다 세상이 싫어 산에 든 사람에게 산이 가르친다 떠들고 싶으면 떠들어라 힘쓰고 싶으면 힘을 써라 길을 내고 싶으면 길을 내고 무덤을 짓고 싶으면 무덤을 지어라 산에 들면 아무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 않는다 제 풀에 겨워 넘어진 나무는 썩어도 악취를 풍기지 않는다 서로 먹고 먹히면서 섣부른 한숨이나 비명은 들리지 않는다 산이 사람을 가르친다 바람의 문법 물은 솟구치지 않고 내려가면서 세상을 배우지 않느냐 산의 경전을 다 읽으려면 눈이 먼다 천 만 근이 넘는 침묵은 새털 보다 가볍다 산이 사람을 가르친다 죽어서 내게로 오라 나호열 시집 / 당신에게 말 걸기 문학이야기/명시 2021.08.08
촉도 촉도(蜀道) / 나 호 열 경비원 한씨가 사직서를 내고 떠났다 십 년 동안 변함없는 맛을 보여주던 낙지집 사장이 장사를 접고 떠났다 이십 년 넘게 건강을 살펴주던 창동피부비뇨기과 원장이 폐업하고 떠났다 내 눈길이 눈물에 가닿는 곳 내 손이 넝쿨손처럼 뻗다 만 그곳부터 시작되는 촉도 손때 묻은 지도책을 펼쳐놓고 낯선 지명을 소리 내어 불러보는 이 적막한 날에 정신 놓은 할머니가 한 걸음씩 밀고 가는 저 빈 유모차처럼 절벽을 미는 하루가 아득하고 어질한 하늘을 향해 내걸었던 밥줄이며 밧줄인 거미줄을 닮았다 꼬리를 자른다는 것이 퇴로를 끊어버린 촉도 거미에게 묻는다 * 시집 『촉도』 (2015) 문학이야기/명시 2020.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