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바위 7

사랑 / 오세영

그림 / 김미혜 사랑 / 오세영 세상사는 일이 무엇이던가 우주는 자연을 기르고, 자연은 생명을 기르고, 생명은 사랑을 기르고, 사랑은 또 우주를 기르나니 저 무심한 바위도 홀로 이끼를 기르지 않던가.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바위가 금 가지 않으려, 깨지지 않으려 버티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억만년 지구를 감싸안고 도는 태양의 사랑이여. 오세영 시화선집 / 바이러스로 침투하는 봄

소풍 / 나 희 덕

그림 / 김 한 솔 ​ ​ ​ ​ 소풍 / 나 희 덕 ​ 얘들아, 소풍 가자. 해지는 들판으로 나가 넓은 바위에 상을 차리자꾸나. 붉은 노을에 밥 말아먹고 빈 밥그릇 속에 별도 달도 놀러 오게 하자. 살면서 잊지 못할 몇 개의 밥상을 받았던 내가 이제는 그런 밥상을 너희에게 차려줄 때가 되었나 보다. 가자, 얘들아, 어서 저 들판으로 가자. 오갈 데 없이 서러운 마음은 정육점에 들러 고기 한 근을 사고 그걸 싸서 입에 넣어 줄 채소도 뜯어왔단다. 한 잎 한 잎 뜯을 때마다 비명처럼 흰 진액이 배어 나왔지. 그리고 이 포도주가 왜 이리 붉은지 아니? 그건 대지가 흘린 땀으로 바닷물이 짠 것처럼 엄마가 흘린 피를 한 방울씩 모은 거란다. 그러니 얘들아, 꼭꼭 씹어 삼켜라. 그게 엄마의 안창살이라는 걸 몰라도..

연못을 웃긴 일 / 손택수

그림 / 아고르 베르디쉐프 (러시아) ​ ​ 연못을 웃긴 일 / 손택수 ​ ​ 못물에 꽃을 뿌려 보조개를 파다 ​ 연못이 웃고 내가 웃다 ​ 연못가 바위들도 실실 물주름에 웃다 ​ 많은 일이 있었으나 기억에는 없고 ​ 못가의 벚나무 옆에 앉아 있었던 일 ​ 꽃가지 흔들어 연못 겨드랑이에 간질밥을 먹인 일 ​ 물고기들이 입을 벌리고 올라온 일 ​ 다사다난했던 일과 중엔 그중 이것만이 기억에 남는다 ​ ​ ​ * 손택수 시집 /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 ​

왕방산 산행 (포천)

​ 뜨거운 여름에 산행이 왠 말이냐고요? 그것도 737.2m 정상까지 헉~~ 소리 납니다. ​ ​ 자동차로 300m 정도, 오지재 고개까지 올라갑니다. 실제로는 정상까지 걸어서 400m 정도 올라갑니다. ​ ​ 왕방산은 오지재 고개에서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남쪽으로 올라가면 해룡산입니다. ​ ​ 아늑한 길이 폭신폭신합니다. 왕방산은 더운 여름에 시원한 산행을 할 수 있는 산입니다. 산이 떠오르는 해를 막아줍니다. ​ ​ 20분 정도는 힘들게 능선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힘들어도 나리꽃처럼 웃으면서 올라갑시다. ​ ​ 어마어마한 돌탑을 누가 쌓아 올렸을까요? 돌 하나에 소원 한 개씩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 ​ 능선에 올라오면 해를 살짝 등지고 걸어서 좋습니다. 여름에 시원하게 걸을 수 있는 산입니다. ​..

수락산 (덕릉고개, 출발)

덕릉 고개에서 출발해서 수락산을 올랐다. 군부대를 지나서 오솔길로 들어섰다. 지난밤에 비가 내려서 하늘이 조금 흐렸다. 소나무에서 귀여운 솔방울이 올라온다. 조금 지나면 송홧가루가 날릴 것 같다. 소나무 한 그루가 산을 지킨다. 멀리서 올라온 손님들 쉬어가라고 벤치도 있다. 잠시 바위 위에서 푸른 녹음을 감상했다. 바위 위에 보라색 붓꽃이 피어있다.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게 나무 울타리도 잘해놓았다. 바위와 굽은 나무들이 보인다. 밧줄을 타고 신나게 올라갔다. 헉~내가 이렇게 날씬하지는 않은데 어쩌나? 바위 위에 거북이가 보인다. 하늘이 점점 맑아진다. 드디어 치마 바위에 도착했다. 치마 바위에서 내려도 보이는 아파트 숲들 운무가 서서히 물러나니 도솔봉이 보인다. 상계동 아파트 단지가 멀리서 보인다. 동쪽..

작은 소망 / 김 명 자

그림 : 베르디쉐프 ​ ​ ​ 작은 소망 / 김 명 자 ​ ​ 깊은 산중 꽃이라면 참 좋겠습니다 그다지 예쁘지 않아도 애써 향기를 팔지 않아도 내 사랑 영원히 하나일 테니까 ​ 인적 없는 산속에 무심히 자란 풀이라면 차라리 좋겠습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구름이 가면 가는 대로 내 눈길 주고픈 대로 마음 주고픈 대로 모두 주어도 짓밟히며 뜯기는 아픔일랑 없을 테니까요 ​ 첩첩 산중 바위라면 정말 좋겠습니다 내 마음 살피는 이 하나 없어도 마음 서운치 않고 세상에 뿌려진 어여쁜 시간들 가슴으로, 한 가슴으로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 ​ ​ 시집 : 인사동 시인들

가을에 대하여 (자작 시)

가을에 대하여 / 이 효​ 누가 불붙여 놓았나 저 가을 산을 하나의 사랑이 된다는 것은 붉은빛이 노란빛으로 타오르다 고요하게 가라앉는 것 하나의 사랑이 된다는 것은 모난 바위가 서로 상처로 굴러가다가 둥근 바위로 물가에 자리를 잡는 것 하나의 사랑이 된다는 것은 결국 자기 가슴 박힌 못에 가을 풍경 한 장 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