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눈동자 4

동물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정끝별

그림 / 최 석 원 ​ ​ ​ 동물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정끝별 ​ ​ ​ 소 눈이라든가 낙타 눈이라든가 검은 눈동자가 꽉 찬 눈을 보면 내가 너무 많은 눈을 굴리며 산 것 같아 ​ 남의 등에 올라타지 않고 남의 눈에 눈물 내지 않겠습니다 ​ 타조 목이라든가 기린 목이라든가 하염없이 기다란 목을 보면 내가 너무 많은 걸 삼키며 사는 것 같아 ​ 남의 살을 삼키지 않고 남의 밥을 빼앗지 않겠습니다 ​ 펭귄 다리라든가 바다코끼리 다리라든가 버둥대는 짧은 사지를 보면 나는 내가 더 많은 죄를 짓고 살 것 같아 ​ 우리에 갇혀 있거나 우리에 실려 가거나 우리에 깔리거나 우리에 생매장당하는 더운 목숨들을 보면 ​ 우리가 너무 무서운 사람인 것만 같아 ​ ​ ​ ​ 시집 / 오늘의 시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

가을 편지 / 나호열

그림 / 노 숙 경 ​ ​ ​ 가을 편지 / 나호열 ​ 당신의 뜨락에 이름모를 풀꽃 찾아왔는지요 눈길 이슥한 먼 발치에서 촛불 떨어지듯 그렇게 당신을 바라보는 꽃 ​ 어느 날 당신이 뜨락에 내려오시면 이미 가을은 깊어 당신은 편지를 읽으시겠는지요 ​ 머무를 수 없는 바람이 보낸 당신을 맴도는 소리죽인 발자국과 까만 눈동자 같은 씨앗들이 눈물로 가만가만 환해지겠는지요 ​ 뭐라고 하던가요 작은 씨앗들은 그냥 당신의 가슴에 묻어 두세요 상처는 웃는다 라고 기억해 주세요 ​ 당신의 뜨락에 또 얼마마한 적막이 가득한지요 ​ ​ ​ 나호열 시인 * 1953년 충남 서천 출생 * 경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 198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 1991년 《시와시학》 중견시인상 수상 * 2004년 녹색 ..

눈부처 / 정호승

그림 : 이 승 희 ​ ​ 눈부처 / 정 호 승 ​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 되리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그대는 이 세상 그 누구의 곁에도 있지 못하고 오늘도 마음의 길을 걸으며 슬퍼하노니 그대 눈동자 어두운 골목 바람이 불고 저녁별 뜰 때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 시집 :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 박 준

그림 : 김 정 수 ​ ​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 박 준 ​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 ​ ​ 박준 시인 약력 * 출생 : 1983년, 서울 * 학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