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냄새 2

비밀의 화원 / 김 소 연

그림 / 서 순 태 ​ ​ ​ ​ ​ ​ 비밀의 화원 / 김 소 연 ​ ​ ​ 겨울의 혹독함을 잊는 것은 꽃들의 특기, 두말없이 피었다가 진다 ​ 꽃들을 향해 지난 침묵을 탓하는 이는 없다 ​ 못난 사람들이 못난 걱정 앞세우는 못난 계절의 모난 시간 ​ 추레한 맨발을 풀밭 위에 꺼내 놓았을 때 추레한 신발은 꽃병이 되었다 ​ 자기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꽃들의 특기, 하염없이 교태에 골몰한다 ​ 나는 가까스로 침묵한다 지나왔던 지난한 사랑이 잠시 머물렀다 떠날 수 있게 ​ 우리에게 똑같은 냄새가 났다 자가밭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 ​ ​ ​ 김소연 시집 / 수학자의 아침 ​ ​ ​ ​ ​

길 위에서 / 나 희 덕

그림 : 정 진 경 ​ ​ 길 위에서 / 나 희 덕 ​ ​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 ​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 ​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 ​ ​ 나희덕 시집 :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 ​ ​ ​ ​ ​ ​ 인천 강화군 교동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