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꽃그늘 4

그림자 / 천양희

그림 / 송태관 ​ ​ ​ ​ ​ 그림자 / 천양희 ​ ​ 마음에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마른가지 몇개 분질렀습니다 그래도 꺾이지 않는 건 마음입니다 마음을 들고 오솔길에 듭니다 바람 부니 풀들이 파랗게 파랑을 일으킵니다 한해살이 풀을 만날 때쯤이면 한 시절이 간다는 걸 알겠습니다 나는 그만 풀이 죽어 마음이 슬플 때는 지는 해가 좋다고 말하려다 그만두기로 합니다 오솔길은 천리로 올라오는 미움이란 말을 지웁니다 산책이 끝나기 전 그늘이 서늘한 목백일홍 앞에 머뭅니다 꽃그늘 아래서 적막하게 웃던 얼굴이 떠오릅니다 기억은 자주 그림자를 남깁니다 남긴다고 다 그림자이겠습니까 '하늘 보며 나는 망연히 서 있었다' 어제 써놓은 글 한줄이 한 시절의 그림자인 것만 같습니다 ​ ​ ​ ​ *목백일홍 (배롱나무) 배롱나..

회전문 앞에서 / 안 재 홍

그림 / 정 진 경 ​ ​ ​ ​ 회전문 앞에서 / 안 재 홍 ​ ​ ​ 꽃잎 하나 하늘거리며 떨어져 내린다 저 가뿐한 몸짓 회전문 앞에서 본다 ​ 나가고자 하나 다시 돌아온 제자리가 진정한 자유인지 모른다 내 안에 안녕이 있음을 떠나본 자들은 알리라 ​ 안에서 나가려 하고 밖에서 들어오려 애쓴다 ​ 안팎의 경계가 꽃그늘처럼 아슴아슴하다 ​ ​ ​ 안재홍 시집 / 무게에 대하여 ​ ​ ​ ​

꽃 그늘에 눕힐란다 / 강 경 주

그림 : 유 복 자 ​ ​ 꽃 그늘에 눕힐란다 / 강 경 주 ​ ​ 개밥도 챙겨 주고 닭 모이도 주어야지 목숨 붙은 것들인디, 나만 믿고 사는디 꽃구경 거 좋겄다만 내사 마 못 가겄다 ​ 여기도 봄은 오고 눈빛 또한 따듯하다 생강나무 꽃숨따라 산수유 노랗더니 무 배추 장다리꽃에 정령 같은 나비 떴다 ​ 꽃 피고 지는 거나 사람 왔다 가는 거나 해 뜨고 지는 일도 내 눈엔 다 한 가지다 한나절 적막한 꿈이나 꽃그늘에 눕힐란다 ​ ​ ​ 시집 : 노모의 설법 ​ 안개꽃 라벤더 ​ ​ 너는, 누구냐 / 강 경 주 ​ 꽃은 무심히 피어 저리도 아름다운데 ​ 나는 마음을 잃고 치매를 앓는 구나 ​ 내가 네 어미였더냐 ​ 언제까지 그랬냐 ​ ​ 시집 : 노모의 설법 ​

화악산 아래서 (자작 시)

화악산 아래서 / 이 효 터널을 빠져나오면 아담한 정자 하나 정자 옆 작은 연못 송사리 떼 지어 피었다. 여름은 산자락 움켜잡고 파란 하늘로 달아난다 계곡의 찬바람은 등을 타고 허기를 채운다. 불량한 세상 언제쯤 코로나 터널 빠져나오려나? 문짝 없는 정자 옆 꽃노래 듣고 싶어라 송사리 떼 잡으러 가는 바람 부서진 사람들 마음 엉거주춤 끌어올린다 해 질 녘 구름을 더듬듯 마음을 꽃그늘 아래 잠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