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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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집 / 나 호 열

그림 / Bea mea soon ​ ​ 칼과 집 / 나 호 열 ​ ​ 어머니는 가슴을 앓으셨다 말씀 대신 가슴에서 못을 뽑아 방랑을 꿈꾸는 나의 옷자락에 다칠세라 여리게 여리게 박아 주셨다 (멀리는 가지 말아라) 말뚝이 되어 늘 그 자리에서 오오래 서 있던 어머니, 나는 이제 바람이 되었다 함부로 촛불도 꺼뜨리고 쉽게 마음을 조각내는 아무도 손 내밀지 않는 칼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멀리 와서 길 잃은 바람이 되었다 어머니, ​ ​ ​ 시집 / 칼과 집 ​ ​

길 / 김 석 흥

그림 / 이 갑 인 ​ ​ ​ 길 / 김 석 흥 ​ ​ ​ 눈에 보이는 길은 길이 아니다 철새들이 허공을 날아 번식지를 찾아가듯 연어떼가 바닷속을 헤엄쳐 모천으로 돌아오듯 별들이 밤하늘을 스스로 밝혀가듯 시공을 가르며 만들어 가는 보이지 않는 그 길이 바로 길이다 ​ ​ 끝이 있는 길은 길이 아니다 나를 찾아 떠나는 끝 모르는 여정 꽃길을 걸은 적이 있었지 가시밭길을 지나온 때도 있었고 숲속에서 길을 잃어 헤매기도 하였지 그러면서 쉼 없이 한 발 두 발 걸어온 길 돌아 보니 지나온 그 길들이 이어져 시나브로 내 삶이 되었다 ​ ​ ​ 김석흥 시집 / 천지연 폭포 ​ ​ ​

비행기재 / 나 호 열

그림 : 이 선희 ​ ​ ​ 비행기재 / 나 호 열 ​ 옷고름 절로 풀리는 여름 한낮 무성한 풀섶을 헤치며 또아리틀듯 길이 칭칭 산을 동여맨다 읊조릴 것 같은데 산은 오르막 몸이 풀리고 핏줄은 짙푸른 힘으로 길을 절정의 저 너머로 밀어낸다 푸드득, 산을 뒤틀며 뛰쳐오르는 새들 더덕냄새 풍긴다 도라지꽃이 활짝 핀다 천궁 씨알이 알알이 배이고 나그네는 내리막길을 휘이 뒷모습만 돌아서 가고 ​ * 비행기재 강원도 정선 땅의 높은 고개 ​ ​

굽이 돌아가는 길 / 박노해

굽이 돌아가는 길 / 박 노 해 올곧게 뻗은 나무들보다는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 휘청 굽이친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일직선으로 뚫린 빠른 길보다는 산 따라 물 따라 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 곧은 길 끊어져 길이 없다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돌아서지 마십시오 삶은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곧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시집 : 마음이 예뻐지는 시 (정지영의 내가 사랑하는 시) 우리가 가는 길이 항상 꽃길만은 아니다. 박..

동두천 칠봉산 (꿈에 관하여)

산행을 통하여 꿈에 관하여 생각해 보았다. 우리들 앞에는 늘 두 개의 길이 놓여있다. 내가 선택한 길이 멀고 지루할 때도 있다. 때로는 내가 선택한 길이 연기처럼 사라질 때도 있다. 그래도 내 옆에는 늘 묵묵히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잔 가지들처럼 헤쳐나가야 할 일들도 많다. 힘들면 잠시 쉬어갈망정 포기는 하지 말자. 기회와 타협을 해야 할 때는 소나무처럼 묵묵히 버티자. 꿈이 세상과 타협하고 싶을 때 첫 마음을 생각해라. 진실과, 거짓이 손을 내밀면 진실과 손을 잡아라. 힘들면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고 쉬었다 가자. 먼저 올라간 선배들의 경험을 무시하지 말고 가자. 마음이 잔가지처럼 복잡해지면 소나무를 바라보자. 꿈이 멀리서 손짓한다 정상 바로 앞에서 돌아서는 어리석은 바보가 되지 말자. 인..

길 / 윤 동 주

​ 길 / 윤 동 주 ​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 담은 쇠문을 굳게 닫어 길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따뜻한 봄날 / 김 형 영

​ 따뜻한 봄날 / 김 형 영 ​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 감아버리더니 한 움큼 한 움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고 가네. ​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 안 하시고 뭐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 ​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을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 ​ * 따뜻한 봄날을 장사익 노래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 시는 화사한 봄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자세히 천천히 읽어보면 고려장을 소재로 한 시다. 요즘은 부모님을 요양원에 보내놓..

카테고리 없음 2020.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