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기도 3

벽속의 어둠 / 이 효

그림 / 이경수 벽속의 어둠 / 이 효 흔들리는 나뭇잎이라도 잡고 싶습니다 나뭇잎도 작은 입김에 흔들리는데 아! 하나님 당신의 숨 한 번 이효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하얀 침대 위 어머니 얼음이 되어간다. 태어나서 스스로 가장 무능하게 느껴진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초라함에 울음도 표정을 잃어버린다. 눈물마저 원망스러운데 창문 넘어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 가지 끝 미세한 흔들림이 눈동자를 찌른다. 아니 그 떨림을 잡고 싶었다. 간절한 기도가 눈발로 날린다. 당신의 숨 한 번 불어주시길~~ 오! 나의 어머니

국화 차를 달이며 / 문 성 해

그림 / 국중길 ​ ​ ​ ​ ​ 국화 차를 달이며 / 문 성 해 ​ ​ ​ 국화 우러난 물을 마시고 나는 비로소 사람이 된다 나는 앞으로도 도저히 이런 맛과 향기의 꽃처럼은 아니 될 것 같고 또 동구 밖 젖어드는 어둠 향해 저리 컴컴히 짖는 개도 아니 될 것 같고 ​ 나는 그저 꽃잎이 물에 불어서 우러난 해를 마시고 새를 마시고 나비를 모시는 사람이니 ​ 긴 장마 속에 국화가 흘리는 빗물을 다 받아 모시는 땅처럼 저녁 기도를 위해 가는 향을 피우는 사제처럼 텅텅 울리는 긴 복도처럼 고요하고도 깊은 가슴이니 ​ ​ ​ ​ *영남대 국문과 졸업 *1998년 매일 신문 신춘문예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 ​ ​ ​

결혼에 대하여 / 정호승

그림 : 오순환 ​ 결혼에 대하여 / 정호승 ​ 만남에 대하여 진정으로 기도해온 사람과 결혼하라 봄날 들녘에 나가 쑥과 냉이를 캐어본 추억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이고 스스로 기뻐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일주일 야근을 하느라 미처 채 깎지 못한 손톱을 다정스레 깎아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콧등에 땀을 흘리며 고추장에 보리밥을 맛있게 비벼먹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어미를 그리워하는 어린 강아지의 똥을 더러워하지 않고 치울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 나무를 껴안고 나무가 되는 사람과 결혼하라 나뭇가지들이 밤마다 별들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고단한 별들이 잠시 쉬어가도록 가슴의 단추를 열어 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 전깃불을 끄고 촛불 아래서 한 권의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