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국밥 2

모자이크 / 박은영

그림 / 최연 모자이크 / 박은영 모자 가정이 되었다 정권이 바뀌고 수급비가 끊기자 국밥 한 그릇 사 먹을 돈이 없었다 아홉살 아이는 식탐이 많았다 24시간 행복포차식당에서 두루치기로 일을 하고 눈만 붙였다가 등만 붙였다가 엉덩이만 붙였다가, 부업을 했다 아이가 손톱을 물어뜯을 땐 국밥 먹고 싶다는 말이 나올까봐 야단을 쳤다 반쪽짜리 해를 보며 침을 삼키던 아이는 일찍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찢어진 날들을 붙이면 어떤 계절이 될까 내가 있는 곳은 멀리서 보면 그림이 된다고 했지만 밀린 인형 눈알을 붙이며 가까이 보았다 초점이 맞지 않아 희부옇게 보이는 내일, 아이의 슬픔이 가려지고 조각조각, 조각조각 깍두기 먹는 소리가 들렸다 박은영 시집 /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

거룩한 식사 / 황 지 우

거룩한 식사 / 황 지 우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게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 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 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 황지우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