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구름은울준비가되었다 2

명태 / 박은영

그림 / 한부열 명태 / 박은영 삼천포항 남해식당 메뉴는 생태찌개 한 가지다 늙은 여주인은 오늘 팔 한 궤짝의 생선을 육두문자로 손질한다 도마가 움푹 파이도록 칼질을 해도 비린내 나는 바닥 벗어날 길 없다며 어두운 지느러미를 내리친다 해로를 잃은 배 한 척, 삼천포 앞바다에 남자를 내어주고 그녀는 오살할 명태를 도마에 올렸다 긁어낸 내장과 대가리를 그러모으는 밤이면 삼천포대교를 건너지 못 한 날 들 이 뚝배기에서 진한 국물로 끓어올랐다 살점을 발라낸 초승달이 눈시울에서 오래 따끔거렸다 끼니때가 되자 넘실거리는 식당 안, 창난젓 명란젓 서리젓 사이 곰삭은 욕을 밥술에 얹어먹는 간간한 하루, 싱거운 농담들은 삼천포로 빠지고 닻을 올린 손님상마다 뱉어낸 토막 뼈가 수북하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는 생이다 ..

발코니의 시간 / 박은영

그림 / 박순희 발코니의 시간 / 박은영 필리핀의 한 마을에선 암벽에 철심을 박아 관을 올려놓는 장례법이 있다 고인은 두 다리를 뻗고 허공의 난간에 몸을 맡긴다 이까짓 두려움쯤이야 살아있을 당시 이미 겪어낸 일이므로 무서워 떠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암벽을 오르던 바람이 관 뚜껑을 발로 차거나 철심을 휘어도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그저 웃는다 평온한 경직, 아버지는 정년퇴직 후 발코니에서 화초를 키웠다 생은 난간에 기대어 서는 일 허공과 허공 사이 무수한 추락 앞에 내성이 생기는 일이라고 통유리 너머의 당신은 그저 웃는다 암벽 같은 등으로 아슬아슬 이우는 봄 붉은 시클라멘이 피었다 막다른 향기가 서녘의 난간을 오래 붙잡고 서있습니다 발아래 아득한 소실점 천적으로부터 훼손당하는 일은 없겠다 하얀 유골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