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가슴 7

비가 (3) / 이승희

그림 / 장주원 ​ ​ ​ ​ 비가 (3) / 이승희 ​ ​ ​ 너를 만나면 나의 가슴은 항상 물이된다 우수 띤 눈자욱 깊숙한 예감 ​ 온 몸으로 울며 쏟아놓은 마디마디 작은 조각인 양 영혼을 가른다 ​ 타던 가슴 제몫으로 사르고 이별 앞에선 아름다운 단절 ​ 끝내 어둠 내리면 등줄기 흐르는 조용한 비가 등불로 길거리에 내린다 ​ ​ ​ 이승희 시집 / 쓸쓸한 날의 자유 ​ ​ ​ ​

절벽에 대한 몇가지 충고 / 정호승

그림 / 신 영숙 ​ ​ ​ 절벽에 대한 몇가지 충고 / 정호승 ​ ​ 절벽을 만나거든 그만 절벽이 되라 절벽 아래로 보이는 바다가 되라 절벽 끝에 튼튼하게 뿌리를 뻗은 저 솔가지 끝에 앉은 새들이 되라 ​ 절벽을 만나거든 그만 절벽이 되라 기어이 절벽을 기어오르는 저 개미떼가 되라 그 개미떼들이 망망히 바라보는 수평선이 되라 ​ 누구나 가슴속에 하나씩 절벽은 있다 언젠가는 기어이 올라가야 할 언젠가는 기어이 내려와야 할 외로운 절벽이 하나씩 있다 ​ ​ ​ ​

상처에 대하여 / 복 효 근

그림 / 박 항 률 상처에 대하여 / 복 효 근 오래 전 입은 누이의 화상은 아무래도 꽃을 닮아간다 젊은 날 내내 속썩었쌓더니 누이의 눈매에선 꽃향기가 난다 요즈음 보니 모든 상처는 꽃을 꽃의 빛깔을 닮았다 하다 못해 상처라면 아이들의 여드름마저도 초여름 고마리꽃을 닮았다 오래 피가 멎지 않던 상처일수록 꽃향기가 괸다 오래된 누이의 화상을 보니 알겠다 향기가 배어나는 사람의 가슴속엔 커다란 상처 하나 있다는 것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시집 / 마음이 예뻐지는 시

꽃이 진다면 / 황 은 경

​ ​ 꽃이 진다면 / 황 은 경 ​ 꽃이 진 자리도 아픈가 봐요 계절의 흐름대로 아픈 자리에 다시 피는 다른 꽃 사람의 가슴처럼 아픔이 있어요 ​ 꽃이 진 자리에는 물기조차 머물 새가 없겠지요 이른 아침 거미그물이 받쳐 준 성수 같은 눈물 초록의 들풀이 꿈꾸는 자리에 떨굽니다 ​ 떠남의 의미가 지워진다고 가슴에 담은 사랑이 지워지지 않아요 꽃이 진 자리에 다시 생명이 닿을 때까지 부디, 우리 아프지 말아요. ​ ​ 시집 : 생각의 비늘은 허물을 덮는다

안아주기 / 나 호 열

그림 : 이 선 자 ​ ​ 안아주기 / 나 호 열 어디 쉬운 일인가 나무를, 책상을, 모르는 사람을 안아 준다는 것이 물컹하게 가슴과 가슴이 맞닿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대, 어둠을 안아 보았는가 무량한 허공을 안아 보았는가 슬픔도 안으면 따뜻하다 마음도 안으면 따뜻하다 가슴이 없다면 우주는 우주가 아니다 ​ ​ 시집 : 타인의 슬픔 ​

작은 소망 / 김 명 자

그림 : 베르디쉐프 ​ ​ ​ 작은 소망 / 김 명 자 ​ ​ 깊은 산중 꽃이라면 참 좋겠습니다 그다지 예쁘지 않아도 애써 향기를 팔지 않아도 내 사랑 영원히 하나일 테니까 ​ 인적 없는 산속에 무심히 자란 풀이라면 차라리 좋겠습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구름이 가면 가는 대로 내 눈길 주고픈 대로 마음 주고픈 대로 모두 주어도 짓밟히며 뜯기는 아픔일랑 없을 테니까요 ​ 첩첩 산중 바위라면 정말 좋겠습니다 내 마음 살피는 이 하나 없어도 마음 서운치 않고 세상에 뿌려진 어여쁜 시간들 가슴으로, 한 가슴으로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 ​ ​ 시집 : 인사동 시인들

파도 / 목 필 균

​ 파도 / 목 필 균 ​ 누구의 채찍이 그리도 무서웠을까 거대한 바위섬을 향해 무작정 돌진하던 파도는 산산이 부서지며 게거품을 물고 까무러쳤다가 다시 독을 품고 달려든다 그러다가 시퍼렇게 그러다가 시퍼렇게 가슴에 멍만 들어 페리호 뱃전에 머리를 박고 두 발을 구르며 떼를 쓰다 눈물도 못 흘린 채 스러져 버린다 누구의 채찍이 그리도 무서웠을까 ​ ​ 1946년 함양 출생 춘천교육대학졸업, 성신여대교육대학원졸업 ​ 1972년 신춘문예 단편 강원일보당선 1975년 신인문학상 중편소설 세대지 시집 :풀꽃 술잔 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