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2021/11/17 2

어머니는 수국화였다 / 권 정 일

그림 / 이 효 어머니는 수국화였다 / 권 정 일 ​ 그때 나는 세모시 저고리에서 달빛보다 더 선연한 바늘의 등뼈가 휘어지는 것을 보았다. ​ ​ 열 손가락 관절이 삐걱이는 소리를 들었다. 수묵화처럼 가지런한 이마가 환한 빛을 내던 토방 쪽마루를 보았다. ​ ​ 어머니 반짇고리 곁에는 내가 이름 지어준 별들이 내려와 집을 짓곤 했다. ​ 못에 찔려 피 흘리던 내 꿈들 우리집 추녀 끝에 밤마다 찾아드는 바닷소리를 들었다. ​ ​ 한 채 섬이 된 우리집 마당으로 물방울처럼 별 하나 별 둘 똑똑 떨어지는 기척이 있었다. 옛날 이야기가 섬이 되어 떠다니고 ​ ​ ​ 푸른 슬레트 지붕이 녹스는 소리마저 정겨운 여름밤이었다. ​ 흑싸리 화투패 같은 빈 껍질의 어머니 가슴에서도 녹스는 소리가 들렸다. ​ 어쩜 그것은..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 (문화일보 2021 신춘문예 시) / 남수우

그림 / 톰 안홀트 ​ ​ ​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 (문화일보 2021 신춘문예 시) / 남수우 ​ ​ ​ ​ 한 사람에게 가장 먼 곳은 자신의 뒷모습이었네 ​ 그는 그 먼 곳을 안으러 간다고 했다 ​ 절뚝이며 그가 사라진 거울 속에서 내가 방을 돌보는 동안 거실의 소란이 문틈을 흔든다 ​ 본드로 붙여둔 유리잔 손잡이처럼 들킬까 봐 자꾸만 귀가 자랐다 문밖이 가둔 이불 속에서 나는 한쪽 다리로 풍경을 옮기는 사람을 본다 ​ 이곳이 아니길 이곳이 아닌 나머지이길 중얼거릴수록 그가 흐릿해졌다 ​ 이마를 기억한 손이 거울 끝까지 굴러가 있었다 ​ 거실의 빛이 문틈을 가를 때 그는 이 방을 겨눌 것이다 번쩍이는 총구를 지구 끝까지 늘리며 제 뒤통수를 겨냥한다 해도 누구의 탓은 아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