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누구에게라도 미리 묻지 않는다면 / 문 태 준

푸른 언덕 2021. 3. 17. 21:12

그림 : 신 은 봉

 

누구에게라도 미리 묻지 않는다면 / 문 태 준

 

나는 스케치북에 새를 그리고 있네

나는 긴 나뭇가지를 그려넣어 새를 앉히고 싶네

수다스런 덤불을 스케치북 속으로 옮겨 심고 싶네

그러나 새는 훨씬 활동적이어서 높은 하늘을 더

사랑할지 모르지

새의 의중을 물어보기로 했네

새의 답변을 기다려보기로 했네

나는 새의 언어로 새에게 자세히 물어

새의 뜻대로 배경을 만들어가기로 했네

새에게 미리 묻지 않는다면

새는 완성된 그림을 바꿔달라고

스케치북 속에서 첫울음을 울기 시작하겠지

 

문태주 시집 :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창비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