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진화론을 읽는 밤 / 나호열

푸른 언덕 2022. 8. 19. 18:10

 

 
                      그림 / 강숙란

 

 

진화론을 읽는 밤 / 나호열

 

 

냉장고에서 꺼낸 달걀은

진화론의 지루한 서문이다

무정란의 하루가 거듭될수록

저 커다란 눈물 한 덩이의 기나긴 내력을

통째로 삶거나 짓이기고 싶은

약탈의 가벼움을 용서하고 싶지 않다

비상을 포기한 삶은 안락을 열망한 실수

사막으로 쫓겨 온 낙타 아버지와

초원을 무작정 달리는 어머니 말

그렇게 믿었던 맹목의 날들이

닭대가리의 조롱으로 메아리친다

다시 나를 야생의 숲으로 보내다오

삶에게 쫓기며 동망치다 보면

날개에 힘이 붙고

휘리릭 창공을 박차고 올라

매의 발톱에 잡히지 않으려는 수만 년이 지나면

쓸데없는 군살과 벼슬을 버린

새가 되리라

진화론의 서문이 너무 길어

달걀을 깨버리는

이 무심한 밤

 

 

 

 

나호열 시집 /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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